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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之有心也

[2009.01.19] 벼랑위에서 행복한 꿈을 보다 - 崖の上のポニョ




행복의 시작
공해로 뒤덮힌 대기속에서 비염에 시달리며 2008년의 마지막(달력은 새것이지만 아직 마음은 2008년이다. 어차피 음력으로는 2008년이니까)달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지브리스튜디오가 보내온 행복한 마법.
'벼랑위에 포뇨'

겉보기에 깨끗한 바다 밑은 쓰레기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풍경속에는 선한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이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교묘한 경계선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나의 뇌와 심장과 영혼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대부분의 지브리 작품이 그러했듯이.

 

벼랑의 의미
'벼랑위에 포뇨' 한글제목을 보고 혹시나 번안된 제목일까 싶었는데(외국 작품에 말도 안되는 한글 제목을 붙이는 짓을 보고 있으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원작자에 대한 모독이랄까.) '崖の上のポニョ' 원제 또한 동일했다.
'이상하다?' 나에게 '벼랑'이 주는 의미는 '절망감', '추락', '비장함' 따위가 아니던가. 나에게 낙화암위에 서있던 백제후손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공감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갖는 느낌이지 않을까? 하지만 잊고 있었던 벼랑의 의미를 작품을 감상해 가면서 느낄 수 있었다.


'기다림', '만남의 공간', 그렇다 우리나라의 고전이나 전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다림의 공간, 바로 그 벼랑이다.
벼랑은 그 시각적인 모습처럼 단절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되는 곳이다. 육지가 끝나고 바다를 만나는 공간, 인간의 세계가 끝나고 물고기의 세계가 시작되는 공간, 현실과 이상이 중첩되고 사실과 마법이 부딛히는 공간, 소스케가 포뇨를 기다리고 엄마 리짱이 아빠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공간, 벼랑은 끝이면서 시작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물고기인 포뇨가 인간의 세계인 벼랑으로 찾아 오는것은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며 따라서 벼랑은 이 작품속에서 가장중요한 장소이자 큰 의미를 내포하는 다중의미의 단어이다.

 

 

운명이란?
작품속에서 소스케의 엄마리짱은 네살박이 소스케에게 '운명이라는 것이 있으며 운명을 바꿀 수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세상과 현실을 알고 있는 성인의 입장에서 엄마 리짱은 소스케가 이런 운명을 자신과는 다르게 풀어나가 주기를 바라는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어린 소스케가 운명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은 결과론적으로 소스케와 포뇨 자신이 운명속에서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됨으로서 엄마의 운명론에 대해 행동으로 반론을 보여주게 되며 이런 일련의 결과물은 엄마리짱의 단정적인 대사와 묘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리짱 또한 대사와는 달리 소스케가 운명의 결정자가 될 수 있는 조력자의 위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현실에서 운명에 순응하는 많은 성인들에게 소스케라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결정자적 메시아를 보여줌으로써 감정적 대리만족을 유도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마법
포뇨와 소스케의 만남은 마법을 통해 시작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마법을 잃어버림으로서 완성된다 그리고 그들 사랑의 완성은 세상을 구원하기까지 한다. 우리들의 사랑도 마법을 통해 시작되시만(혹자들은 '눈위에 콩깍지'라고 표현한다) 그 마법을 잃어버려야만 진정한 사랑이 완성되며 서로의 세상을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포뇨와 소스케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동경이다.


 

우리들의 꿈
누군가는 '우리가 어릴적 꾸었던 꿈은 일제였다'라며 자탄하고 일본에니메이션을 혹평했지만 어릴적 마법에 대한 동경과 순수한 사랑을 다시금 꿈꾸게 해준 포뇨와 소스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또한 안델센의 '인어공주'를 오마주해서 이런 좋은 작품을 선보인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음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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